sentiment2011. 7. 5. 22:39

같은 얘길 여러 번 하는 일이 많아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둔다.


카이스트 다닌다고 하면 중고등학생 학부모님들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냐는 것인데, 내 답변은 언제나 같다.

"허허, 지가 좋아서 해야죠..."

어릴 때부터는 나는 굉장히 산만하고 호불호가 매우 분명해서 집중을 오래 하지 못했고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공부를 안했다.
담배를 핀다거나 게임에 빠져있다거나 하는 탈선(?)은 한 적이 없지만, 독서실에 꾸준히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으로 대변되는 보통의 모범생과 나는 꽤 거리가 멀다.
공부할 때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바른 자세로 제대로 공부한 일이 거의 없었고, 집중시간도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혼자서 딴 짓도 많이 했는데,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몰두대상이 게임이 아니라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 연주하고, 컴퓨터로 홈페이지 만들고 그래픽디자인 하는 것이었다는 정도의 차이였달까. 

나의 장점이라고 꼽을 수 있는 점이라면, 다방면에 호기심도 많아 독서편력이 심했고, 궁금한 것은 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의문을 모두 해결주었던 부모님께도 고마워해야할 일이지만, 인터넷 이후에는 검색으로 모두 해결하곤 해서 지금도 모르는게 있으면 바로바로 검색해본다.
(최근 깨달은 건데, 우리학교 학생들을 비롯해서 공부 좀 했다 하는 친구들은 모두 비슷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나는 경쟁심은 별로 없었고, 대신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았다.

예를 들면, 시험에서 나는 내가 몇 등인지보다는 내 점수가 몇 점인지에 더 관심 있었고, 그래서 친구들 시험 점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와 5학년 때 각각 국어 점수와 사회 점수가 엄청 낮게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마 6-70점대 였던듯) 그 충격으로 다음 시험에서 국어와 사회를 집중적으로 대비해서 그 이후에는 고등학교 때까지 국어/사회에서는 단 한 번도 90점 밑의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각주:1]
중학교 때는 전교 석차 몇 등이 아니라 늘 평균 99점을 목표로 시험 준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카이스트에 가게된 이야길 하려면 역시 날 과학고로 이끈 중학교 심화반 얘기부터 해야할 것 같다.
당시 나는 대구에서도 교육의 변방으로 치부되는 신도시 '성서'에 살았는데, 내신 공부만 하기 바빴지 다른 공부를 딱히 더 하고 있진 않았다.
우연히 학교 대표로 출전한 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대구시 남부교육청 심화교육반 선발시험이었다.
교육청 소속 중학교 학생들을 뽑아서 물리, 화학, 생물, 수학, 영어 등을 교육시켜서 공교육의 틀에서 '영재'를 만들어보자는 시도 같았는데, 여기에 선발되면서 처음으로 좀 어려운 물리란걸 접하게 되었는데 아마 이 때 처음으로 물리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수월성 교육을 해보자는 곳인만큼 모든 것이 철저하게 경쟁원리에 따라 작동했다. 남부교육청은 두 반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시험 성적대로 번호와 반이 배정된다. 즉, 1~30등까지는 A반, 31~60등까지는 B반이었다. 나는 처음 들어갈 때 B반 10번대 이었으니, 전체에서는 40등대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나서는 매달 시험을 쳐서 반을 바꾸는 시스템이었다.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수성구는 동부교육청 소속이어서 남부교육청은 교육열이 그나마 덜하긴 했지만, 남부교육청 산하에는 대구의 목동이라고 할 수 있을 달서구의 몇몇 지역이 포함되어 있어 꽤 많은 학생들이 이미 선행을 꽤 하고 온 상황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 친구 누군가는 대학화학책을 보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수2를 3번째 보고 있다고 했다.[각주:2]
그런 상황에서 한 학기 선행도 안하고 있던 나는 당연히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는 그 충격에, 그리고 물리라는 학문의 재미에, 학교 시험은 거의 내팽개치고(라고 해도 반 1등은 유지했지만) 심화반 공부에 매달렸고 그렇게 다음 시험에서 바로 A반으로 들어간 뒤 A반 중위권을 유지했다.
이 때 역시 아버지로부터 수학과 물리를 배우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심화반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과학고라는 것이 있는지 몰랐는데, 물리에 재미를 느끼면서 과학이 하고 싶어졌고 자연스레 카이스트가 가고 싶어졌는데, 카이스트에 가려면 과학고에 가는 것이 좋다고 해서, 과학고로 나의 진로를 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커오는 데 있어서 부모님 역할이 꽤 컸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은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신 일이 거의 없었다.
외동이었기 때문에 외동티 안나게 키우시겠다고(;;) 생활습관 면에서는 많이 터치하셨지만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온전히 내 뜻이었다.
물론 당시 박사학위 따고 있던 아버지를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어머니가 바빴던 탓도 있지만, 그것이 부모님의 교육철학이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무언가를 강권하지 않으셨지만, 나에게 다양한 선택지들을 계속해서 소개해주셨고, 넉넉치 않은 상황에 국내여행이라도 다니며 계속 어떤 식으로든 내게 새로운 자극을 주셨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경제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웬만하면 모두 지원해주시는 편이었다.

어릴 때 다들 많이 하던 학습지도 내가 하기 싫다고 하면 바로 끊고, 하고 싶다고 말하면 바로 등록해주셨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다녔던 종합반도 다니고 싶다고 하자 바로 등록해주셨다.[각주:3]

이런 태도는 진로를 정할 때도 비슷하게 작용했다.
나는 내 주장이 분명한 편이었고, 부모님도 이를 못이기는 척 잘 받아주셨다.
공대 교수님이신 아버지는 내가 의대를 가길 내심 바라셨는데, 내가 과학고를 갈 당시에는 특목고가 본래 취지와 달리 법대와 의대에 많이 진학한다며 내신 불이익을 줄 때였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내가 일반고로 진학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학군 좋은 수성구로 이사까지 하셨다.[각주:4]

반면 나는 비위가 약해 의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고,[각주:5] 대신 과학고 진학 후 카이스트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내신 관리에 집중하여 전국 과학고 중에 대구과학고에만 있던 내신 특별전형으로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여전히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셨다.[각주:6]


과학고에 일단 들어간 뒤에는 나 스스로 많이 긴장을 했다.
'수성구'에서 온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경쟁이라고 생각했다.
1학년 때는 코피도 자주 흘릴 정도로 참 열심히 했다.
잠은 많아서 피곤할 때마다 참지 않고 푹 잤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주는 1,2차 자습시간 만큼은 거의 100% 활용을 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 했다는 정도?
결국은 수업하는 선생님이 내는 시험 문제이니 학원에서 선행을 했다해도 수업시간에 논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이렇게 나 스스로 절박함을 느끼고 열심히 했던 덕분에 과학고에서도 반1등을 거의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고등학교 2학년 중반에 본 한 사설 모의고사에서는 전국 10등 안에 들기도 했고.

 
학생은 또 다른 하나의 인격체로, 부모가 만든다고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부모의 역할은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기회를 보여주고, 학생이 필요할 때 필요한 지원과 조언을 해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교육에서의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떠밀려서 공부하는 아이는 결코 꾸준히 공부할 수 없다.
대학갔다고 끝이 아니지 않나.
 

  1. 2005 수능 언어 영역도 과학고에서 비중있게 배우지 않은 고전문학 부분에서 1~2개 틀린 데 그쳐 1등급을 받았다. 카이스트 합격이 결정된 뒤여서 쓸모는 없는 성적이었지만. [본문으로]
  2. 둘 모두 과학고 동기가 되었다. 대학화학책을 보던 친구는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후 명문 의대에 진학했다. [본문으로]
  3. 사실 그 때 나는 친구들 만나러 학원에 다녔고, 학원 홍보 차원에서 전교 5등 이내의 학생들에게는 전액 장학금을 줘서 학원을 거의 공짜로 다녔다....ㅋㅋ [본문으로]
  4. 초등학교/중학교 과정에서 다른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내가 성적에 비해 학교에서 조금 부당한 대우를 받았었고, 이에 대해 뭔가 느낀 어머니 께서는 나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3 때만큼은 어머니가 하던 일도 그만 두실 만큼 부모님 모두 교육 문제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본문으로]
  5. 사실 할아버지도 아버지에게 의대에 가야한다고 하셨다던데, 아버지도 고집대로 공대에 진학하셨다고 한다. [본문으로]
  6. 과학고는 해당 지역 출신 학생만 지원할 수 있었다. 즉, 서울에 거주하는 학생은 서울/한성과학고만, 대구에 거주하는 학생은 대구과학고만 지원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Posted by 이파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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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솔한 수기 잘 읽고 갑니다..^^

    2011.07.07 00: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seirion

    나도 1,2차 자습시간은 100% 활용했지! 수면으로(...)

    2011.07.08 22:16 [ ADDR : EDIT/ DEL : REPLY ]